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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복지국가를 위하여 [조형근의 낮은 목소리]

조형근 | 동네 사회학자 그립고 버겁다…. 명절 귀성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문장이다. 버거운 이유를 말하기는 버겁다. 오가는 불편 탓도 있다. 아스라한 그리움이 교통대란에 짜증으로 바뀐다. 1990년대는 악몽이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버스로 24시간쯤 걸린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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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고 버겁다…. 명절 귀성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문장이다. 버거운 이유를 말하기는 버겁다. 오가는 불편 탓도 있다. 아스라한 그리움이 교통대란에 짜증으로 바뀐다. 1990년대는 악몽이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버스로 24시간쯤 걸린 적도 있다. 고속전철이 생긴 후 기차만 타는 이유다. 이번 추석에는 사정이 있어 승용차로 오갔다. 놀랍게도 고속도로 통행료가 무료였다. 2017년 추석부터 명절마다 면제란다. 통행료 인하·폐지를 공약한 문재인 정권이 재정 부담을 고려해 택한 차선책이었다고. 코로나19 때만 빼고 지속 중이라 사실상 제도화됐다. 기후위기 시대에 대중교통보다 승용차 이용을 권하는 정책이다.

면제된 통행료는 어떻게 메울까? 민자 고속도로에는 재정으로 보상하고 한국도로공사에는 보상이 없다. 공사의 부채로 쌓인다. 추석 전 정부 발표로는 그동안 1조450억원의 통행료가 면제됐다. 그중 상당액이 승용차 이용자에게 돌아갔다.

이 정도 혜택은 괜찮지 않을까? 자동차 소유자가 봉이라는 불만도 있는데. 신차를 사면 개별소비세, 교육세, 부가가치세를 내고, 등록 때는 취득세, 1600㏄ 이상은 공채 구입도 한다. 매년 자동차세에다 연료값에 붙는 유류세도 있다.

내는 돈은 잘 보인다. 받는 돈은 잘 보이지 않는다. ‘감면’이란 형식 탓이다. 감면된 통행료만큼 보조금을 받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세금은 빼앗긴 것으로 또렷이 인식되지만, 감면은 받은 게 아니라 덜 빼앗긴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승용차 소유자는 어떤 감면을 받고 있을까? 먼저 유류세 인하다. 2021년 11월 6개월 한시로 시작된 유류세 인하는 20차례 넘게 연장 중이다. 환원하면 인상이라며 반발할 것이다. 세수 감소액이 20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개별소비세 인하도 수시로 반복된다. 나 같은 전기차 소유자에 대한 취득세, 개별소비세 인하와 보조금 지급도 막대하다.

은폐된 보조금도 있다. 아파트는 가구당 1대 이상 주차장을 지어야 한다. 지하주차장 1면 설치에 수천만원 넘게 든다. 비용은 분양가와 관리비에 포함돼 차 없는 가구도 똑같이 낸다. 차 있는(많은) 집이 차 없는(적은) 집에서 보조금을 받는 구조다.

주택가 골목과 이면도로는 공공 공간이지만 사실상 무료 주차장이다. 제주도를 제외하면 차고지증명제 도입도 요원하다. 주차 비용이 공짜라 판매와 소유가 늘었다. 자동차 회사와 승용차 소유자에게 수십년간 ‘퍼준’ 보이지 않는 보조금이 천문학적 규모일 것이다.

승용차는 대중교통보다 혼잡, 소음, 교통사고, 탄소배출, 대기오염 같은 부정적 외부효과를 더 많이 낳는다. 누군가 이 비용을 물어야 하지만 승용차 소유자의 부담은 크게 못 미친다. 역시 그만큼 보조금 수령 중이다.

물론 세상일에는 양면성이 있다. 유류세 인하분만큼 물가가 낮아지고 생계형 이용자에게 도움이 된다. 차고지증명제가 없으니 서민도 차 소유가 쉽다. 자동차 판매가 늘어나면 고용과 법인세가 늘어난다. ‘좋은 일’이다. 문제는 승용차 없는 이들과의 형평성이다. 승용차 소유자가 막대한 보조금을 받는 동안 승용차 없는 이들에게는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났을까?

추석이 막 지났으니 고속·시외버스 실태를 통해 살펴보자. 이 업계는 코로나 이후 승객 감소와 유류비·인건비 상승으로 어려움이 크다. 지난해까지 10여년 만에 노선이 4584개에서 3203개로 30% 줄었다. 2018년 이후 민영 버스터미널 44곳이 문을 닫았다. 거창이 고향인 지인은 김천까지 기차로 가서 거창까지 버스를 타는데, 하루 네다섯차례이던 버스가 이제 두차례뿐이라고 한탄한다. 귀성길 버거움이 갈수록 태산이다.

민영 고속·시외버스에 대한 지원은 보잘것없다. 국토교통부가 벽지노선에 대해 올해 451억원을 배정하고 향후 필수노선 지정을 밝혔지만 구체안은 불분명하다.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한번만으로도 1천억원 남짓 지원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사회경제적 약자, 지방에 대한 재정 지원은 곧잘 혈세 퍼주기라며 비난받는다. 반면 승용차 소유자와 제조사가 받아온 천문학적 보조금에 대해 퍼주기라며 문제 삼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여론과 정치에 미치는 힘의 차이가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다.

구조적인 이유도 있다. 어려운 이들에 대한 복지 혜택은 쉽게 가시화되고 비난의 대상이 된다. 반면 기업과 중상위 계층에 제공되는 복지 혜택은 잘 보이지 않고 당연시된다. 영국의 사회정책학자 리처드 티트머스는 국가가 직접 주는 사회복지, 세금 감면을 통한 재정복지, 기업을 통한 직업복지를 구분하고, 뒤의 두가지가 주로 중산층 이상에 돌아가는데도 복지로 인식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사회정책학자 크리스토퍼 하워드는 통상의 사회복지와는 달리 각종 공제로 이뤄지는 세금 지출은 은밀하게 이뤄지며, 중위소득 이상의 개인과 기업을 위한 거대한 ‘숨겨진 복지국가’로 이어진다고 비판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기초생활보장이나 장애인 지원을 받으려면 소득과 재산 심사를 받아야 한다. 금액은 예산서에 또렷이 찍히고, 해마다 삭감 논쟁의 표적이 된다. 받는 과정 자체가 낙인이다. 반면 중산층 이상과 기업에 대한 보이지 않는 지원은 갈수록 커지고 논란도 적다.

이렇게 정부가 공제·감면해주는 세금을 조세지출이라고 한다. 올해 81조원 안팎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조세지출 상위 항목 중 신용카드 소득공제와 보험료 공제는 늘었다. 저소득 가구에 대한 근로장려금만 1.6% 줄었다. 조세지출 개인 몫 중 고소득자 비중도 2021년 28.9%에서 지난해 33.4%로 커졌다. 가처분소득이 클수록 더 많이 받는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상위 대기업집단의 세금 감면액은 4조2685억원으로 1년 새 81.8% 늘었다. 저리의 정책금융과 신용보증, 대마불사라는 암묵적 보증까지 더하면 보조금 규모는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오해를 피하자. 나는 ‘당신들의 복지국가’에 반대하지 않는다. 나도 그중 한명이니까. 공공의 자산으로 서로 배려하는 건 국가의 존재 이유다. 그러니 “배려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제 발등 찍는 소리는 삼가자. 우리야말로 보조금 인생 아니던가. 우리는 은밀하게 받아도 다른 이들은 떳떳하게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자. 이게 인지상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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