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줄어드는 ‘고민의 시간’ [세상읽기]
최동범 |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박사과정을 시작하고 가장 낯설고 힘들었던 일은 스스로 연구 주제를 찾는 일이었다. 좋은 연구는 좋은 질문에서 시작한단다. 그런데 질문이 좋다는 게 대체 뭘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며칠씩 끙끙대며 아이디어를 준비해 가도 교수님들은 “그런
박사과정을 시작하고 가장 낯설고 힘들었던 일은 스스로 연구 주제를 찾는 일이었다. 좋은 연구는 좋은 질문에서 시작한단다. 그런데 질문이 좋다는 게 대체 뭘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며칠씩 끙끙대며 아이디어를 준비해 가도 교수님들은 “그런 게 왜 중요한가”라고 되묻기 일쑤였다. 나름 공부하는 요령은 있다고 생각했는데, 무엇이 잘못됐는지조차 몰라 꽤 오랫동안 슬럼프를 겪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익숙했던 공부는 주어진 문제를 풀고 정답을 구하는 일이었다. 물론 이런 공부도 중요하다. 좋은 질문도 결국 탄탄한 이해와 배경지식이 있어야 나온다. 하지만 문제를 푸는 훈련에 비해 무엇을 물어야 할지 스스로 고민하고, 왜 그 질문이 중요한지 남을 설득해본 경험은 턱없이 부족했다.
연구를 업으로 삼고 지내다 보니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이 조금은 보이는 것도 같다. 단순히 많이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존의 설명에서 납득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집요하게 따져봐야 한다.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다 보면 막연했던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미처 보지 못했던 문제가 드러나기도 한다. 답을 찾아가는 일도 비슷하다. 영감은 어느 순간 불쑥 떠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개는 오랜 고민과 시행착오 끝에 나온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을 쓰기 시작하면서 질문을 찾고 답을 만들어가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처음에는 자료를 찾고 정리하거나, 간단한 분석을 하고 문장을 다듬는 데 주로 활용했다. 덕분에 일의 속도가 빨라졌고, 낯선 분야를 공부하기도 한결 쉬워졌다.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바로 물어보고 필요한 배경지식을 그때그때 확인할 수 있으니, 새로운 주제에 접근하는 부담도 줄었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성능이 좋아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사실이나 정보를 넘어 의견과 해석까지 구하는 일이 많아졌다. 예전 같으면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생각했을 문제도, 충분히 고민하기 전에 가능한 답부터 받아보는 일이 잦아졌다. 물론 그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무엇을 취하고 버릴지는 결국 내가 판단하니, 생각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시간을 아끼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하기도 한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편리함에 익숙해질수록 복잡한 문제를 붙들고 이리저리 씨름하는 일이 점점 번거롭게 느껴진다는 점은 마음에 걸린다.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걱정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장 신경 쓰였던 것은 인공지능을 이용한 부정행위였다. 과제나 논문을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작성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무조건 못 쓰게 하는 것도 교육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잘만 활용하면 학습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고, 앞으로는 자연스럽게 쓰게 될 도구를 학교에서만 억지로 막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다. 못 쓰게 하는 것보다 어떻게 쓰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최근 들어 더 걱정되는 것은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을 건너뛰게 되는 일이다. 나부터도 이게 문제라는 걸 알면서 종종 편리하다는 이유로 그러는데, 아직 배우는 단계의 학생들이라면 오죽할까. 하지만 판단력은 오랜 숙고와 시행착오 속에서 서서히 길러진다. 그 과정을 인공지능에 맡겨버리면 번듯한 결과물은 훨씬 빨리 얻겠지만, 판단하는 법을 익힐 기회는 그만큼 줄어든다.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따져보는 경험이 부족하면 좋은 질문을 찾아내기도 어렵다.
그간 우리 교육은 지식을 익히고, 이를 바탕으로 주어진 문제의 답을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그런데 이는 인공지능이 특히 잘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다가오는 시대에는 적절한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비판적으로 해석해 판단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이런 힘은 직접 부딪치고 암중모색하는 과정에서 길러지는데, 인공지능을 쓰다 보면 정작 그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다운 이유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 과정까지 인공지능에 맡기기 시작하면 대체 우리에게는 무엇이 남을까. 내가 하는 생각은 정말 내 생각일까, 아니면 인공지능이 알려준 생각일까. 이런 질문을 붙들고 있다가도, 머지않아 그 답마저 인공지능에 묻고 있을 것 같아 조금 무섭다.

